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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야기

수산건(蹇)

전설에 의하면 복희씨가 황하에 출현한 용마의 등에 있는 무늬를 보고 8괘(건태리진손감간곤)를 만들고

이것을 겹쳐 64괘를 만들었다고 한다.(64괘는 신농씨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사람들이 이로서 점을 치니 하나라에는 '연산역'이 있었고 은나라에는 '귀장역'이 있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역이라 부르는 것은 주나라에 이르러 만들어졌으니 - 그리하여 주역이다.

문왕이 각각의 괘마다 괘사를 붙이고 그 아들인 주공이 각각의 획마다 효사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하의 단전이니 상전이니 하는 것은 십익이라고 하여 공자가 달아놓은 주석이라 한다.

정확히는 단전 상 하, 상전 상 하, 계사전 상 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의 10개이다.

 

주역의 64괘 중에서도 4대 난괘라 하여 수뢰둔괘, 산지박괘, 택수곤괘와 바로 이 수산건괘를 꼽는다. 생긴 것은 다음과 같다. 그림 가운데의 여섯 작대기(?)를 볼 것. 작대기 하나 하나를 효라고 부르며 가운데가 이어진 것을 양효 끊어진 것을 음효라고 한다. 아래에서부터 하나씩 구해나가는데 처음에는 거북이 등껍질로, 그 다음에는 시초라 불리는 풀로 점을 쳤고 이 시초가 대나무를 잘게 쪼갠 산가지로 대체되기도 하였으며 후대에 이르러서는 동전 세개를 던지는 방식이 유행하였다. 허나 앞선 시대의 누구도 아래의 '주역 타로'라는 혼종을 예상하지는 못하였으리라.

 

 

역에 이르길

 

괘사

건괘는 서남쪽에 이롭고 동북쪽에는 이롭지 않다. 대인을 만남이 이롭고, 올곧아서 길하다.

 

효사 

초육(첫 번째 음효) : 가면 절름거리고 오면 명예를 얻는다.

육이(두 번째 음효) : 왕과 신하가 거듭 절름거리는데 이는 제 한 몸을 위함이 아니라.

구삼(세 번째 양효) : 가면 절름거리고 만나고 오면 돌이킨다.

육사(네 번째 음효) : 가면 절름거리고 오면 연대한다.

구오(다섯 번째 양효) : 대인이 절고 있는데, 벗들이 온다.

상육(여섯 번째 음효) : 가면 절고 오면 크게 이룬다. 대인을 만남이 이롭다.

 

단전에 이르길

건은 어려움을 의미한다. 험난함이 앞에 있으니 이 험난함을 보고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로다! 서남쪽이 이로운 것은 가면 중을 얻기 때문이고, 동북쪽이 불리한 것은 그 도가 막히기 때문이다. 대인을 만나봄이 이롭다는 것은 가면 공이 있기 때문이고 자리가 마땅하여 바름을 지켜 길한 것은 나라를 바르게 하기 때문이다. 건의 때와 쓰임이 크도다!

 

상전에 이르길

산(간괘를 의미함) 위에 물(감괘를 의미함)이 있음이 건괘니 군자는 이를 본받아 제 자신에게로 돌이켜 덕을 닦는다.

가면 어렵고 오면 명예를 얻는다 함은 마땅히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다.

왕과 신하가 거듭 절름거림은 끝내 허물이 없다는 것이다.

가면 어렵고 만나고 오면 돌이킨다는 것은 안에서 기뻐함이다.

가면 어렵고 오면 연대한다는 것은 그 처한 자리가 실하기 때문이다.

대인이 절고 있는데 친구가 온다 함은 중도를 따르기 때문이다.

가면 절고 오면 크게 이룬다 함은 뜻이 안에 있기 때문이다. 대인을 만남이 이롭다는 것은 귀인을 따르기 때문이다.

 

 

해설

 

우선 괘사부터 수수께끼이다. 혹자는 설괘전에 나온 각 괘가 상징하는 방향에 의거하여 서남은 땅을 뜻하는 곤괘이고 동북은 산을 뜻하는 간괘이니 서남으로 감이 이롭다 함은 평지를 가듯 쉬우니 이롭다는 것이고 동북으로 감이 이롭지 않다 함은 산을 가듯 어려우니 이롭지 않음이라고 풀이한다. 하지만 나는 이 해석에 동의하지 않는다. 애당초 쉽게 가는 것에 대해 말할 요량이면 구태여 건괘의 상에 엮을 이유가 무엇인가? 혹은 이미 건괘에 이르러 어려움은 닥쳐왔는데, 평지가 어디 있으랴? 낙양을 기준으로 보면 서남방은 지세가 험난하며 동북방은 평야지대이다. 험한 곳을 걸을 때는 신중할 수밖에 없으며 평지를 걷자면 느슨해지기 쉽다. 곤란한 상황에 처한다면 마땅히 그에 맞게 처신해야 할 터, 이것이 괘사에 담긴 의미라고 생각한다.

 

또 많은 이들은 건괘의 도를 단전의 '험난함을 보고 멈출 수 있다는 것은 지혜로운 것이로다'라는 구절에 의거하여 어려운 일을 마주쳐 삼가고 기다리고 내실을 다지는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것이면 구태여 기다림을 뜻하는 수괘를 따로 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건괘에는 기다림 그 이상의 것이 있다. 절름거린다는 것은 일단 움직여봐야 그 상태가 드러나는 것이며 또한 각 효사에서 오고 가는 것에 대하여 논하고 있으니 분명히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커다란 도는 '움직임'과 연관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물론 기본적인 괘의 상을 무시할 수는 없다. 이 건괘는 부드러움을 뜻하는 음효가 맨 아래에 있기에 간괘의 멈춤을 이루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즉 초효가 음이 아닌 양이라면) 간괘가 이괘로 바뀌어 수화기제괘의 모습이니 그 이름이 의미하는 대로 이미 건너감을 뜻하였으리라. 

 

그렇다면 도대체 움직이면서 멈춰있는 상황이란 대체 무엇인가? 이를 설명하기 위해 때로 인생이 쳇바퀴에 갇혀 돌아가는 것 같은 경험을 떠올려보길 권하고 싶다. 해도 해도 일은 줄어들지 않고 상황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험악한 산에 구름마저 끼어버린 모습이 아닌가? 허나 해는 산마루에 걸려 지고 있는데 갈 길은 멀다. 당신은 마냥 기다리기만은 할 수 없고 앞으로 나아가야만 한다. 그렇기에 나는 여기서의 멈춤을 쉽게 흔들리지 않는 굳건함이라고 새겨본다. 마땅히 기다림은 조바심 내지 않음이요, 제 한 몸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함은 구태여 공명이나 사사로운 이익을 좇지 않는다는 것이다. 거듭 절름거림은 어려움을 거듭 만남이나 산과 같은 마음을 유지할 수 있다면 끝내 허물이 없지 않겠는가?

 

구삼효의 와서 돌이킴은 대체 무엇인가? 1.3.5번째는 본디 양의 자리이고 2,4,6은 음의 자리이다. 양은 굳건함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나아감의 뜻도 가지는데 마침 자리까지 3번째이니 그 뜻이 더욱 커질 법도 하다. 하지만 1은 4와 2는 5와 3은 6과 응하고 마침 이 괘의 6번째 자리에는 음효가 자리하고 있다. 이 상육효가 구삼효와 응하여 부드러움으로 타이르니 다시 돌이켜 육이효와 서로 합하여 간괘의 도를 완성한다. 

 

구오효는 굳셈의 덕을 지닌 양효가 다섯 번째 자리(이는 상괘의 가운데 자리이기도 하다)를 차지함이니 양의 도가 왕성한 이이다. 덕과 지위의 측면에서 능력도 있고 큰 인물이지만 위아래로 두 음들 사이에 자리 잡고 있어 빠르게 갈 수가 없다. 애초에 감괘가 상징하는 것이 험난함과 어려움이 아니던가? 그러니 절로 스스로를 낮은 위치에 둘 수밖에 없다. 이러면 높아지고자 하는 자는 낮아지고 낮아지고자 하는 높아진다는 이치로 그에게 도움의 손길이 닿음이니 육사의 연대함이나 상육효의 귀인을 좇음이 구오의 입장에서는 도우러 오는 벗을 말한 것이며, 상육효의 또 다른 의미는 이렇게 힘을 얻은 구오효가 일 처리에 있어서도 끝까지 부드러움의 도를 따른다는 것이니 결국 큰 일을 이뤄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를 일컬어 서괘전에서는 사물이 끝까지 어려울 수만은 없기에 막혔던 것이 풀린다는 해괘로서 건괘의 다음을 받고 있다고 설명한다.

 

즉 나는 멈춤으로써 움직임을 논하는 건괘의 역설을 동중정이라는 세 글자로 이해해보고자 한다.

본디 이 겨울의 마지막 추위를 맞아, 한겨울의 첫 한파를 떠올리며 지뢰복 괘에 대하여 써보고자 하였다.

하지만 가까운 이에게 좋지 않은 신호가 보였고 이후에 어떤 사건이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가만히 헤아릴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상황을 따져보니 괘상과 부합하는 바가 있다는 판단을 하였고

그렇다면 그에 담긴 이치 또한 그만큼은 유효하리라 생각하여, 함께 나누고자 이 글을 썼다.

 

어려운 일을 만나서, 가면 힘든 줄을 알게 되면서도 자신만을 위함이 아닌 공공의 선을 위해 나아감이니

논어에 이르길 歲寒然後知松柏之後凋也라 함과 같으며 구오효의 덕이 있다고 생각한다. 존경을 표한다.

어려움 이후 뜻을 함께하는 이들이 모이면 도가 왕성해진다 하였으니 그 이치가 여기서도 남김없이 드러나길 바라며

끝까지 음유함의 도(부드러움, 확실함, 치밀함)로 임하여 각자에게 마땅한 몫이 돌아가는 결과로 이어지길!

 

p.s. 소위 말하는 '점'을 쳐서 상황을 예측한 것은 아니다. 더 나아가 주역이나 타로와 같은 것들에 통찰이 깃들어있다고 생각하긴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대로의 미래 예지가 가능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에 차차 풀어놓을 기회가 있을 것이다.

 

p.s.2 험난한 상황에서 멈춤을 보존하며 나아감이 큰 일을 이루는 요체라고 한다면, 기다림을 의미하는 수괘가 품은 뜻이 아무래도 건괘만은 못한 것일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이에 대해서도 기회가 될 때 풀어보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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