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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야기

21.05.23

'무인과 거문고'를 넘기다가 인상깊은 구절을 발견하여 듬성듬성 옮겨본다.

 

정서를 통제하지 못하면 생리반응이 커지고 미친 열정이 비로소 예술이라고 여기나, 실은 감수성은 얕고 도량은 좁다.

(중략, 오늘날의 소위 예술병 걸린 이들에게도 일침이 될 만한 말이다)

기혈이 조정되지 않으면 기법을 함부로 말한다.

(중략)

기법 단계에 이르면 곧 개인의 총명함과 재능과 지혜를 살피는데, 많은 사람 모두 다 대강대강 해서, 기법을 배워도 깊이 따지는 사변 능력이 없다. 어떤 사람의 기본이 좋다는 말은 실은 사변능력이 강한 것이다. 아무리 많이 연습해도, 극히 미세한 정도로 깊이 따져 연구하지 않고, 피부와 힘줄의 민감함에 이르도록 구체적이지 않으면 솜씨는 틀릴 수 밖에 없다.

(중략)

고금이 튕기는 한 음은 바로 서법이 쓰는 한 점인데, 싱싱한 대추처럼 포만해야(가득차야) 한다. 서법과 고금은 모두 다 꿰뚫는 힘인데, 힘이 종이 뒷면에 통하도록 붓을 대어야 하고, 검이 갑옷을 찍어 쪼개는 듯이 손가락을 튕겨 현을 쳐야 하고 후려 찍어 들어가야 한다.

 남당의 이후주가 말하기를 글씨를 쓰는 사람 거의 다 붓을 잡을 줄 모른다는데, 사실은 어떻게 잡는지 (겉모습은) 모두 다 알고 위치도 틀리지 않으나, 그러나 다들 이렇게 잡는 것이 힘을 발출하기 위한 것임을 깊이 연구하지 않아서 본래 의미를 잃었다는 뜻이다.

 

 손가락이 움직이고 소리가 난다고 해서 음악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한동안 지난 세월의 광대짓이 부끄러워 고개를 들고 다니지 못했는데, 그 시절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부분이다. 더 경험을 쌓고 나서는 그동안 접한 여러 분야에서 학습의 원리가 하나로 통한다고 생각하게 되기도 했었다. 하지만 요즘은 그 견해에 일부 수정하는 각주를 달기 시작했는데 바로 '시험공부'라는 것은 보다 정확히는 시험기간이 임박한 상황에서의 '공부'라는 것은 그 단어의 본래적 의미라기 보다는 특수한 상황에서의 문제해결 내지는 생존에 가깝지 않는가 하는 것이다. 깊은 연구 따위가 독이 되어 버리는 시간을 겪으며 이게 뭔가 싶어 한탄하다가, 군자는 항상 이래야 함도 이러지 말아야 함도 없다는 구절을 떠올리며(정확한지 모르겠다) 감탄해본다. 이렇듯 세상일이 뭐든 한가지로 꿰이는 일이 드문 것이니, 배워가는 단계에서 도리어 말이 어눌해지는 구간이 찾아오는거 아닌가 싶다. 여기서 한번 더 도약해야 소위 '이빨 잘 터는' 사기꾼보다 지식도 전달력도 뛰어난 전문가가 되는 것이겠지.

 

요점은 내가 공부나 학습에 대해 안다고 생각한 것도 아직은 설익었던 것이었구나 하는 생각을 해봤다는 것. 요새는 이렇게 요약 안하면 글 못읽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해서 덧붙여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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