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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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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0.03. 요즘 수련 과정에서 느끼는 것은 결국 돌고 돌아 기본이라는 것이다. 그럼 그동안의 수련은 무엇이었는가 생각해 본다면 처음에는 모든 것이 부족하여 그 기본을 제대로 할 수 없기 때문에 허용되는 범위 내의 오차 안에서 힘을 길렀던 것이라 생각한다. 내가 오랜시간 돌아온 것은 각종 사건사고의 영향도 있었지만 이것을 몰랐던 이유가 가장 크다. 그냥 하던 대로 한 것이다. 여전히 가끔 불편하지만 작년 11월의 부상과 그것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여태껏 신경을 쓰지 않던 부분을 신경쓸수 밖에 없게 된 부분은 긍정적인 부분이었다. 하던대로 그냥 힘든건 악으로 깡으로 넘기려고 들면 무릎이 아팠기 때문에 요결이라는 것을 좀 더 신경쓰게 되었고 그게 다듬어질수록 무릎에 데미지가 덜 가는 것을 겪게 되었다. 최근들어서는 새..
수료식 후기 #자고 일어나니 사고 났던 다음날 아침의 10분의 1만큼 목이 뻐근하고, 여기저기 쑤셨다. 벽에 걸어놓은 검을 보니 어제가 수료식이었음이 실감이 났다. 하루종일 짧게 이런생각 저런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여 두서없이 쏟아내 본다. #아침 리허설때 평소보다 잘해보려고 하다가, 그냥 10년 수련하던 날 중의 하루처럼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처음엔 그래도 단독수련 파트는 잘 하고 대련 파트만 좀 못했구나 했는데 누가 일부를 영상으로 찍어줘서 투로 파트를 봤더니 부족함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당장 영상만 기준으로 해서 봐도 동작 간에 편차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단서가 된다. 어떤 동작은 다른 동작에 비해 확실히 중심이 덜 떨어진다든가, 이 동작에 비해 저 동작은 뭔가 답답해보인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
왜 강철 호랑이는 종이 호랑이가 되었는가? - 전통 무술의 쇠락에 대하여 제목은 대성권의 종사인 왕향재 노사의 글에서 빌려왔다. 최근에 소위 전통 무술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여 관련된 영상이나 글들을 봤는데, 실로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왜 무엇을 배웠다면서 실제의 격투에서 그 동작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 왜 형의권을 배웠다면서 스텝을 밟고 잽을 날리고 숙달도 안된 로우킥을 하려 드는가 왜 팔괘장을 배웠다면서 피정타사의 수법이나, 특유의 보법이 전혀 쓰이지 못하는가? 태극권까지 가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 어느 정도는 이쪽 계열을 욕 안먹이실 분들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만약 여러분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권투 도장에 가서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그리고 스텝을 거울을 보며 열심히 연습한 다음에 링 위에 올라갔을..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3) 마지막 편입니다. 출처는 앞서의 두 글과 같습니다. 손가태극권 태극권, 형의권, 팔괘장을 연구한지 수십 년 후 손록당은 손가태극권을 만들어내었다. 손검운은 손가태극권에 팔괘장의 보법과 형의권의 다리기술과 허리기술, 태극권의 유법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손록당노사의 태극권 손록당은 그의 태극권을 매우 잘 알게 되었고 그의 능력으로 이를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손록당의 기술은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그 소문은 일본까지 다다랐다. 한 일본의 유명한 무술가는 손록당의 기술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고 손록당과 겨루기위해 그를 일본에 보내주도록 천황을 설득하였다. 1921년 일본의 무술가는 손록당을 방문하였고 통역인을 통해 이야기했다. “나는 당신이 유로 강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중국무술을 수련한다는 말을 들었습니..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2) 출처는 (1)편의 서두에 밝힌 바와 같습니다. 곽운심을 만나다. 이괴원이 곽운심에게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가 중년이 되어서의 일이며 비록 그의 무공이 높다할지라도 그의 스승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1882년 봄 이괴원은 곽운심을 만나기 위해 손록당을 심현으로 데려갔다. 곽운심은 손록당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했고 이괴원도 그의 형의권수련을 계속하기 위해 함께 머물렀다. 손록당은 새로운 스승과 함께 있기 위해 이사를 했고 하루 종일 형의권을 수련하였다. 손록당의 형의권을 보았을 때 곽운심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곽운심은 손록당은 형의권중 원숭이형상의 기술에 특히 능하다고 말하며 손록당을 활후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는 손록당의 선천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고 결국에는 그의 스승이었던 이괴원의 수준..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1) 이하의 글은 형의권 연구회 카페에 올라와 있던 내용을 사부님의 허락을 받고 옮긴 것이다. 사부님도 한병기의 무예이야기라는 카페에서 가져오셨다고 한다. 허나 이야기를 듣자하니 원래의 출처는 형의권학 영문판의 일대기 부분으로 짐작된다. 손록당의 일생 손록당이라는 이름은 내가권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그는 형의권, 태극권, 팔괘장의 고수였으며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앞의 세 가지 무술을 종합하여 손가 태극권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이름은 중국무술을 수련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중국무술의 영웅들과 같이 손록당의 명성은 그를 전설로 만들었고, 그의 환상적인 무술실력에 관한 이야기들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80살이 된 손록당의 딸 손검운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5) 1. 어떻게 해야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거나, 혹은 빠르게 바른 길로 복구할 수 있는가 개인 단련을 성실하게 하면 사실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수련터와 떨어져서 혼자 단련할 일이 많았던 과거사를 돌이키면, 그런 상황이 장기화 될 때 확실히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은 장담할 수 있다. 냅둬도 안망가지는 어떤 임계점을 넘지 않는 이상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혹은 사람이 살다보면 일 폭탄을 맞거나, 어딘가를 다치거나 하는 등의 사건을 겪게 되어 원치 않게 단기적인 단절의 흐름을 겪을 수도 있다. 이때 역시 약간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혹은 어느날 갑자기 - 사부의 말에 의하면 실력이 한단계 오르려 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 갑자기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생..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4) 지난 월요일 개인수련때 과욕을 부렸다. 군 시절 다친 다리 뒤쪽이 다시 아파와서 오늘도 정기수련은 쉬어야 했다. 마침 이렇게 된 김에 글이나 적어보자 하고 오랜만에 시작해본다. 오늘의 주제는 형의권 하면서 많이들 고생하는 부분 중에서 하나만 말해보려 한다. 귀한 가르침을 함부로 질질 흘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 하나가 되느냐 아니냐가 초급과 중급을 가르는 기준 같다. 삼체식을 그럭저럭 정확하게 서게 되면 중급 단계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부께서 (지금 단계에서 할 만큼은) 잘하고 있다고 하면 많이들 괄호 속을 읽을 수 없기에 스스로 잘 선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진실은 터치해봤자 아직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기다림을 당하는 것에 가깝다. 완전한 삼체식의 상태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