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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수료식 후기

#자고 일어나니 사고 났던 다음날 아침의 10분의 1만큼 목이 뻐근하고, 여기저기 쑤셨다. 벽에 걸어놓은 검을 보니 어제가 수료식이었음이 실감이 났다. 하루종일 짧게 이런생각 저런생각이 떠올랐다 사라졌다 하여 두서없이 쏟아내 본다.

 

#아침 리허설때 평소보다 잘해보려고 하다가, 그냥 10년 수련하던 날 중의 하루처럼 하자는 마음으로 임했다. 처음엔 그래도 단독수련 파트는 잘 하고 대련 파트만 좀 못했구나 했는데 누가 일부를 영상으로 찍어줘서 투로 파트를 봤더니 부족함이 여기저기서 보였다. 당장 영상만 기준으로 해서 봐도 동작 간에 편차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이 단서가 된다. 어떤 동작은 다른 동작에 비해 확실히 중심이 덜 떨어진다든가, 이 동작에 비해 저 동작은 뭔가 답답해보인다든가 하는 것이 그것이다. 한 곳에서 새는 바가지가 다른 곳에서도 새듯 그러한 부족함은 다른 곳에서도 미숙함을 만든다. 하지만 이제와서 무슨 말을 덧붙이든 그만큼이 현재 내 수준이다. 나머지도 딱 수준만큼 했다.

 

#멋좀 부려볼까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성격이랑 안 맞아서 나머지 부분도 다소 질박했을 것이다. 겉보기가 실질을 앞지르는 것이 습관이 되면 언젠가는 가격 조정의 철퇴를 맞게 되는데 살다보니 그런 것들이 싫어졌다.

 

#대나무가 자라며 마디를 짓듯이 이렇게 중간에 한번 점을 찍으면서 지금까지 해온 것을 돌이켜보는 것도 성장하는 좋은 길이었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같이 한 두 사람은 몇달 사이에 그전보다 많이 잘하게 된 것이 눈에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그랬고, 나 역시나 연습 잘 안하고 치우쳤던 부분을 돌아보게 되었다. 평소에도 그렇게 하면 더 잘했을 것이지만 솔직히 그런 행사같은 압박이 없이 동기부여가 힘든 측면도 인정할 수 밖에 없다. 젊고 오만하던 초창기에는 그런 것들이 유난스럽게 느껴졌지만 돈을 벌게되고 나서부터는 생계를 책임지면서도 뭔가를 이어간다는 것의 무게를 깨닫고 반성하였고 열심히 하지 못하게 되었을 때, 그러던 어느 하루 스스로가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을 때, 과거에 지었던 생각들이 다 부메랑처럼 돌아온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냥 자기 할 일 잘하는 것만으로도 허우적거리기 바쁜게 인생이구나 싶다. 

 

#이 글을 쓰는 지금까지도 기쁨과 회한이 교차한다. 괜히 슬프다가도 후회 많던 인생에 즐거움이 찾아와준게 어디냐 싶고 그렇다. 허나 그것들은 지나간 세월에 대한 감정이고 미래로 주제를 바꾸자면, 어깨가 무겁다는 것이 가장 선명한 감상이다. 몇년간 밖으로 떠돌다가 다시 공부의 길로 들어서서 앞애 쌓여있는 책들을 보면서 느끼는 그 마음과 매우 닮아있다. 어쩌면 이것 자체가 분야와 선택을 떠나서 커다란 틀 아래에서 이맘때쯤 주어졌을 인생의 과제일지도 모르겠다.

 

#갑자기 관성과 재미를 제외하고 이걸 계속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 두개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구든 힘에도 욕심이 날 수 있고 명예에도 욕심이 날 수 있다. 실전성을 추구한다든가 이쪽 바닥이 욕먹는게 싫다는 마음들의 이면에는 그런 두가지가 있는 거 아닐까? 어쩌면 본능적인 부분일지도 모른다. 모든 인간은 짐승이 절반이니까. 

 

#하지만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문명의 빛이고, 그 핵심은 본능에 고삐를 채우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비단 무술을 떠나서 어느 분야에서 뭘 하든 힘이니 명예니 하는 것들은 알아서 따라오게 두어야지 침흘리는 개처럼 쫓아가서는 모양도 빠질 뿐더러 위험하다. 가령 지수함수 패턴의 코로나 확산 앞에 사람들이 처음에는 방심하고 어느 순간에는 패닉에 빠지듯, 혹은 각종 주식에서 차트가 그리는 현란한 움직임 속에 개미들이 학살당하듯 인간의 본능은 직선적인 흐름을 쉽게 받아들이고 그 이외의 흐름에 약한데 세상과 운명은 그렇게 움직여주지 않기 때문이다. 빛이 쇠하니 작은 영리함이 실패에 좌초하고, 큰 지혜는 어리석음의 오명을 뒤집어쓴다.

 

#Tempus est optimus iudex rerum omnium. 가던 대로 가자.

 

수료식 이후 받은 검, 날을 세우지 않아 법적 규제의 대상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