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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1)

이하의 글은 형의권 연구회 카페에 올라와 있던 내용을 사부님의 허락을 받고 옮긴 것이다.

사부님도 한병기의 무예이야기라는 카페에서 가져오셨다고 한다.

허나 이야기를 듣자하니 원래의 출처는 형의권학 영문판의 일대기 부분으로 짐작된다.

 

 

손록당의 일생

 


손록당이라는 이름은 내가권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그는 형의권, 태극권, 팔괘장의 고수였으며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앞의 세 가지 무술을 종합하여 손가 태극권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이름은 중국무술을 수련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중국무술의 영웅들과 같이 손록당의 명성은 그를 전설로 만들었고, 그의 환상적인 무술실력에 관한 이야기들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80살이 된 손록당의 딸 손검운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하는 많은 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고개를 가로 저었다. 그녀는 그의 부친이 비록 무술의 고수였다 하더라도 초인은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다. 1992년 10월과 1993년 9월 중국 북경에 있는 손검운의 집에서 행해진 인터뷰에서 손검운은 그의 부친의 세부적인 배경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사실적인 글을 쓸 수 있도록 손록당의 일대기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다. 이글의 정보들은 손검운이 나에게 준 책과 손검운과의 인터뷰내용에 기초하고 있다.


손복전(孫福全)으로도 알려진 손록당은 1861년 하북성 보정(保定) 인근의 완현에서 태어났다. 당시의 청정부는 부패해 있었고 사람들은 고통 받고 있었다. 손록당의 부친은 작은 농장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매우 열심히 일했지만 정부의 과중한 세금 때문에 겨우 살아갈 수 있을 뿐이었다. 


그는 중년이 되었고 여전히 미혼이었다. 그가 매우 정직하고 성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던 그의 친구 중 한 명이 중매를 섰고 손록당의 부친에게 젊은 여성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로 인해 둘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 1년 후인 1861년 그들은 아들을 낳았고 복전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다. 복전이란 이름은 그 가족들에게 희망찬 미래를 가져다주라는 의미에서 지은 것이다. 


손복전은 어린 시절부터 매우 영리했다. 그의 영리함을 알아본 손록당의 부친은 그가 일곱 살 되던 해부터 지방의 학자에게 보내어 공부를 시켰다. 손록당의 부친은 돈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아들을 가르치는 대가로 그의 농장에서 얻은 작물들을 학자에게 주었다. 


그가 아홉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이미 삼자경(三字經) 같은 고전문헌과 다양한 유교문헌을 읽고 기억하였다. 반복적인 말하기와 쓰기를 통해 이 고전들을 기억하는 것이 당시 학생들의 수업의 주된 교육과정이었다. 손록당의 기억력은 매우 비범하였고, 그가 아홉 살 때 이미 많은 고전문헌을 기억하고 있었으며 서예에도 능했다.


그가 아홉 살이 되던 해 부친의 농장에서 수확이 좋지 못하자 청정부에서 부과한 과중한 세금을 감당할 수 없었다. 흉작으로 인해 손록당의 부친은 손록당의 스승에게 수업료를 낼 수 없었고 손록당은 계속 공부할 수 없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손록당의 부친은 감옥으로 끌려가는 것을 면하기 위해 그의 토지를 포함한 모든 것을 팔아서 세금을 냈다. 토지를 판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손록당의 부친은 병으로 사망하였다. 손록당과 그의 모친은 농사지을 땅도 없었고 아무런 수입도 없는 상태였다. 심지어 그의 부친의 시신을 담을 관조차도 구할 수가 없어서 손록당이 구걸하여 그의 부친의 관을 구할 때까지 삼 일간 부친의 시신을 집안에 안치시켜야 했다.


농사지을 땅도 없고 의지할 곳도 없는 상황에서 손록당의 모친은 손록당을 양육할 수 없다고 느꼈다. 손록당의 모친은 지역의 유지를 찾아가서 손록당을 하인으로 고용해 줄 수 있을지 물었다. 유지는 마지못해 승낙했고 손록당을 그의 집에 기거하게 하고 그를 먹여주었다. 그러나 손록당이 어리고 연약해보였기 때문에 그에게 돈을 주지는 않았다. 유지는 손록당이 임금을 주어야 할 만큼 충분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손록당의 고용주에게는 손록당보다 두 살 위인 아들이 있었는데 그 아들은 손록당을 괴롭히는 것을 즐겼다. 게다가 그 유지는 그의 아들이 손록당을 괴롭힐 수 있는 기회들을 제공하였다. 손록당은 맞서 싸우고 싶었지만 그가 그의 직업을 잃게 되면 그의 모친을 당황케 할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손록당은 괴롭힘을 견디면서 열심히 일했다.

 


무술을 깨닫다.


하루는 손록당이 들판에서 양을 치고 있을 때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가까운 언덕에 올라가서 무술을 수련하고 있는 한 무리의 사람들을 보았다. 무술을 가르치는 선생은 넉넉잡아 70살에 가까운 듯 보였다. 그의 눈 속에는 많은 영혼을 담고 있었고 그가 시범을 보이는 무술동작은 빠르고, 힘차고 깨끗했다. 손록당은 이전까지 한 번도 무술이란 것을 본 적이 없었고 그의 눈에 비친 무술에 매료되었다. 손록당은 다음날 그 스승을 찾아가서 무술을 가르쳐줄 수 있을지 물어볼 것을 결심했다.


다음날 손록당은 그 무술선생의 집을 찾아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처음에 그 스승은 손록당이 장난을 친다고 생각했다. 그는 손록당이 어디에서 왔는지 물었고 손록당은 그의 부친이 어떻게 사망하였으며 그가 지금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을 위해 일하고 있다는 것을 이야기했다. 손록당의 정직함과 성실함이 그 스승을 움직였다. 그는 손록당에게 왜 무술을 배우고 싶어 하는지 물었다. 손록당은 그의 고용주와 그 아들이 자신을 괴롭힐 때 그에 대항하고 싶다고 대답했다. 

스승은 말했다. 

“무술은 단순히 싸움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그 원리는 매우 심오하다.” 

무술수련에 대한 손록당의 의지는 완강했다. 스승은 고난을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손록당은 무술을 수련하는 한에는 어떠한 어려움도 감당할 수 있다고 대답했다. 


손록당이 열 살 되던 해 처음으로 무술스승을 모시고 무술수련을 시작했다. 하루일이 끝나고 나면 손록당은 그의 스승을 찾아와서 한밤중까지 무술을 수련했다. 그의 스승도 젊은 시절 매우 어려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손록당의 처지를 동정했다. 무술을 배운 후부터 그 스승은 매우 공정하였으며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와주었다. 


한번은 그가 괴롭힘을 당하는 어떤 사람을 도우러 갔다가 괴롭히는 사람을 죽여 버렸다. 정부는 그의 죄를 물어 그를 처형하려하였고 그는 자신의 집을 떠났다. 그는 먹고살기 위해 길거리에서 그의 무술을 팔았고 돈을 구걸했다. 후에 그는 태평천국의 난에 가담하여 청군대를 상대로 싸웠다. 그는 십팔반병기뿐 아니라 소림권과 팔극권의 달인이었다. 


손록당은 비범한 학생이었다. 그가 무술을 수련한지 1년 후 그는 기본적인 기술에 능숙해졌고 홍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손록당은 이미 64수의 대련수, 경공, 기공 그리고 암기술을 배웠다. 스승은 손록당의 천부적인 재질과 영리함을 알아보고 매우 빠른 속도로 가르쳤다. 손록당이 무술을 배운지 2년 후 그는 그 지역에서 또래의 사람들 중 가장 뛰어난 싸움꾼이 되었다. 


그의 스승은 그가 자만심을 갖지 않도록 하기위해 그에게 그는 매우 빨리 배웠지만 그가 배운 것은 진정한 무술의 겉부분에 불과할 뿐이며 때문에 그가 이룩한 성취를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하지 말아야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었다. 스승은 손록당에게 그의 젊은 시절의 이야기를 해주고 그의 나이에서 뛰어난 수준에 도달했음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는 매우 뛰어나며 억압받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매우 뛰어난 무술가와 싸웠고 큰 부상을 입었다. 스승은 자신의 상대가 자신을 죽이려 했지만 그 싸움의 참관인이었던 소림사 승려가 너무 늦기 전에 자신을 구했기 때문에 죽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 승려는 스승을 데리고 소림사로 돌아갔고 그는 2년 동안 거기에 머물렀다. 그는 소림사에서 탄퇴(彈腿), 64수의 대련수, 72금나(擒拿) 그리고 경공을 배웠다.


손록당이 그의 스승에게 무술을 배운지 3년이 되던 해 그의 모친은 손록당이 무술을 배우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녀는 그가 매우 연약하고 상처받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에 매우 불안해했다. 그녀는 손록당에게 더 이상 무술수련을 하지 말 것을 권하기 위해 그를 찾아갔다. 그러나 그녀가 도착했을 때 그는 이전보다 훨씬 더 강하고 건강했으며 그녀는 손록당에게 무술수련을 멈추게 하려는 시도를 그만두었다. 손록당은 항상 야위고 약했다. 손록당의 육체적인 진보는 그의 모친으로 하여금 무술이 손록당에서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인식하게 하였다.

 


손록당이 12살이 될 무렵 손록당의 주인은 모든 하인들을 데리고 반나절동안 새해를 축하하였다. 손록당은 자신의 집으로 가서 어머니를 만나려했다. 그가 떠나려했을 때 주인의 아들이 들어와 손록당을 괴롭히기 시작했다. 그는 “너는 무술을 수련했지. 만약 네가 무술을 잘한다고 생각하면 내 앞에서 나의 사촌과 싸워봐라”라고 말했다. 손록당보다 8살이 많은 그 사촌이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매우 크고 강하게 보였으며 솔각(?角)을 수련하고 있었다. 


그 사촌은 손록당의 상의를 움켜잡고 그를 안뜰로 집어던졌다. 안뜰에서 그 사촌은 손록당의 옷을 움켜쥐고 그의 머리위로 손록당을 들어 올린 후 그를 내동댕이쳤다. 내동댕이쳐진 손록당은 공중에서 가볍게 몸을 틀어 착지했다. 이 장면은 그 사촌을 광분하게 만들었지만 손록당 역시 그의 옷이 찢어졌기 때문에 매우 화가 났다. 그가 다시 손록당을 집어던지기 위해 손록당에게 달려들었을 때 손록당은 주먹을 날려 그의 태양신경총을 타격하고 그의 등을 때렸다. 


바닥에 쓰러진 사촌은 그가 먹었던 새해 축하음식을 모두 토해내 버렸다. 주인의 아들은 그의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주인은 큰 막대기를 들고 안뜰로 달려와 손록당을 때려죽이려 했다. 다른 하인들은 주인의 등을 붙잡고 손록당을 때리지 말도록 납득시키려했다. 주인은 손록당에서 당장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말라고 말하며 그렇지 않으면 때려죽이겠다고 소리쳤다. 손록당은 그곳을 떠났고 그의 모친이 있는 집으로 갔다. 


젊은 손복전이 관심을 가진 것은 오직 무술이었다. 그는 일하길 원하지 않았으며 단지 무술수련을 하길 원했다. 그는 연명하기 위해 그리고 모친의 짐을 덜기 위해 야생의 식물을 먹었다. 당시의 많은 무술가들이 나쁜 평판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 주민들은 손록당이 커서 틀림없이 산적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현실은 손록당이 더욱 더 결심을 곤고히 하도록 만들었다. 손록당은 주민들에게 자신은 반드시 위대한 무술가가 될 것이며 그 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을 도울 것이며 모든 주민들의 자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쫓겨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손록당은 자신이 일을 계속할 수 없고 그의 모친을 돌볼 수 없다는 이유 때문에 매우 부끄러워했고 풀이 죽어 있었다. 하루는 손록당이 그의 모친에게 먹을 쌀을 구걸해 오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손록당은 매우 풀이 죽어 있었고 쌀을 구걸하는 대신 밖으로 나가 목을 매달려 했다. 


올가미가 손록당의 목을 죄어왔을 때 두 명의 여행자가 올가미를 자르고 손록당을 구했다. 손록당은 아직 죽지 않았고 그들은 손록당을 그의 모친에게 데려갔다. 두 친절한 여행자는 손록당과 함께 걸어가면서 나쁜 상황이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고 그를 납득시켰으며 손록당은 자살하려는 것을 그만두었다. 여행자중 한명은 손록당과 그의 모친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었으며 그들은 그 돈을 가지고 손록당의 삼촌을 방문하기 위해 보정(保定)으로 갔다. 


손록당의 삼촌은 붓을 파는 가게를 가지고 있었다. 그는 손록당이 가게의 점원으로 일하도록 해주었다. 삼촌의 가게에서 일하면서 손록당은 매일 서예를 연습했다. 그는 종이와 먹을 살수 없을 정도로 가난했기 때문에 종이쓰레기위에 물로 글을 썼다. 손록당의 삼촌은 친절한 사람이었고 그의 가게는 문전성시를 이루었다. 


그는 손록당과 그의 모친을 위해 방과 탁자를 마련해 주었으며 손록당에게 주기적으로 월급도 주었다. 그의 삼촌과의 관계로 인해 손록당은 보정에서 그의 무술수련을 계속할 수 있었다. 손록당의 삼촌에게는 두 명의 막역한 친구가 있었다. 한명은 장씨성을 쓰는 사람으로 학자였으며 다른 한명은 이괴원(李魁元)이란 이름의 인물로 태안표국을 소유하고 있던 무술가였다.


이괴원은 유명한 곽운심(郭雲深)에게서 형의권을 배우고 있었다. 하루는 그가 화물을 호송하고 있을 때 곽운심을 만났다. 이때 그는 자신의 기술을 시험해 보기위해 곽운심에게 친선시합을 청했다. 이괴원의 보법과 발차기는 유명했다. 시합동안 이괴원을 곽운심에게 발차기를 시도하였다. 곽운심은 가볍게 두드리듯이 이괴원의 발차기를 막았지만 이괴원은 한참을 뒤로 밀려나 땅에 뒹굴었다. 이괴원이 일어났을 때 그는 조금도 다치지 않았다. 


곽운심은 그의 도전을 받고 확실히 그에게 아무런 부상도 입히지 않은 채 그를 제압했다. 이괴원은 그가 매우 뛰어난 고수임을 알게 되었다. 그는 곽운심에게 달려가 무릎을 꿇고 그의 제자가 되기를 청했다. 곽운심은 그를 가르치기를 승낙하였고 이괴원은 곽운심에게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했다. 이괴원은 곽운심의 밑에서 수년간 형의권을 수련했다. 이괴원은 이미 무술에 능통하였기 때문에 곽운심은 그를 빨리 가르칠 수 있었고 이괴원의 무술실력은 크게 향상되었다. 


하루는 손록당의 삼촌이 그의 학자 친구인 장씨에게 선물을 보낼 준비를 하면서 손록당에게 짐꾸러미에 이름과 주소를 쓰게 했다. 장씨가 그 선물을 받았을 때 장씨는 짐꾸러미속의 내용물보다 짐꾸러미에 쓰인 서예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장씨는 손록당의 삼촌을 방문하여 그 서예를 누가 썼는지 물었다. 그 서예를 쓴 사람이 자신의 친구의 조카임을 알게 되었을 때 장씨가 말했다. “자네는 나에게 자네의 가족들 가운데 이 같은 재능을 가진 젊은이가 있다고 말한 적이 없네.” 장씨는 15살이 된 손록당에게 서예에 대해 더 배우고 싶을 때마다 그의 집에 오라고 말했다. 


손록당은 여가시간동안 서예를 배우기 위해 장씨의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그가 무술가인 이괴원을 처음 만난 것은 장씨의 집에서였다. 손록당을 만났을 때 이괴원은 손록당이 강직하고 영리한 소년임을 알아챘다. 손록당이 무술을 배운 경험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괴원은 손록당에게 형의권을 배울 것을 권했다. 무술을 향한 손록당의 애정은 사그라지지 않았었고 손록당은 새로운 스승을 만났다는 것에 흥분했다. 


형의권을 배우다


이괴원은 첫해에 손록당에게 단지 삼체(三體)라는 자세만을 가르쳤다. 그는 다른 어떠한 것을 수련하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손록당은 왜 그가 단지 서기자세만을 가르치는지 의아해 했지만 그의 스승이 그에게 서기만을 가르치는 것을 불평하지는 않았다. 6개월이 지난 후 손록당은 마치 그의 가슴과 배가 가득차고 그의 발이 뿌리가 된 것처럼 느꼈다. 그는 서기수련을 통해 내공이 증진되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진정한 공부(功夫)라고 생각했다. 이 같은 경험을 한 후 손록당은 더욱 열심히 자세수련을 하게 되었다. 


손록당이 자세수련을 한지 1년 가까이 지났을 때 하루는 그의 스승이 손록당의 수련장면을 보고 그의 능력을 시험하기 위해 몰래 다가갔다. 이괴원은 장으로 손록당의 등을 쳤지만 이괴원의 타격에도 불구하고 손록당의 자세는 요지부동이었다. 그는 손록당이 매우 뛰어난 수준에 올랐다는 것과 무한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그는 손록당에게 그와 함께 생활하자며 손록당을 초대했고 손록당에게 형의권의 다섯가지 원리와 열두 동물들의 형상을 가르쳤다. 


학자 장씨의 오십 번째 생일이 되었을 때 이괴원과 손록당은 그를 축하하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았다. 이때 장씨는 이괴원에게 손록당을 정식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했다. 이괴원은 손록당이 형의권의 계보에 한 위치를 차지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열심히 수련하였음을 인정하였고 이괴원이 속한 형의권계열의 7세 전인이 되는 것을 허락하였다. 이 형의권계열은 희륭풍(姬隆風)으로 알려진 희제가(姬際可)에 의해 창시된 것으로 조개무(曹繼武)에 이어 대륭방(戴隆邦), 이능연(李能然), 곽운심, 이괴원을 거쳐 손록당에 이른다. 


장씨가 이괴원에게 손록당을 정식제자로 받아들일 것을 제안한 후 이괴원도 장씨에게 제안을 했다. 이괴원은 “내가 자네의 권고를 받아들여 손록당을 정식제자로 삼았으니 이제 내가 자네에게 제안을 하나 하겠네. 나는 자네가 손록당을 사위로 삼고 손록당과 자네의 딸을 결혼시켰으면 하네”라고 말했다. 장씨의 딸 장연현(張?賢)은 당시 16세였고 손록당은 18세였다. 장씨와 이괴원은 이 둘이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고 둘은 약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손록당은 당장 결혼하기를 윈치 않았다. 손록당은 그가 그의 가족을 부양해야할 걱정을 하기 이전에 무술수련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다. 


이괴원은 손록당에게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가르쳐주었다고 말했다. 이괴원은 손록당에게 만약 형의권을 더 배우고 싶다면 자신의 스승이었던 관운심에게 소개시켜주겠다고 제안했다. 손록당은 과운심에게 무술을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매우 흥분했지만 반면 자신의 모친을 돌보아야 한다는 점을 걱정했다. 학자 장씨는 그 점에 대해서 아무런 걱정을 하지 말라고 말했다. 그는 손록당이 곽운심에게 형의권을 배우는 동안 손록당의 모친을 자신의 집에 모시고 돌보겠다고 말했다. 모친에 대한 일이 해결되고 손록당은 그의 무술수련을 계속하기 위해 준비를 했다. 이괴원은 그의 스승 곽운심에게 손록당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하북성 심현으로 손록당을 데려갔다. 


곽운심은 이낙능(李洛能)이라고도 알려진 이능연에게서 형의권을 배웠다. 젊은 시절의 곽운심은 싸움하기를 좋아했다. 곽운심이 처음 형의권을 배우기 위해 이능연을 찾아갔을때 이능연의 곽운심의 폭력적인 심성 때문에 형의권을 가르치길 거부했었다. 이능연은 곽운심에게 그의 폭력적인 심성을 바꾸지 않는 한 결코 그를 가르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곽운심은 이능연의 집 근처에서 하인으로 일하며 이능연과 그의 제자들이 형의권을 수련하는 것을 몰래 훔쳐보았다. 곽운심은 3년동안 스스로 붕권(崩拳)을 수련했다. 하루는 이능연이 곽운심이 붕권을 수련하는 장면을 보았는데 이미 곽운심이 뛰어난 수준에 올라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능연은 형의권을 배우고자하는 곽운심의 진심을 알게 되었고 그에게 형의권을 가르칠 것을 승낙했다.


몇 년 동안 이능연에게서 형의권을 배운 곽운심은 현상금사냥꾼이 되었다. 당시의 법에서 볼 때 현상금사냥꾼은 범죄자들을 붙잡아 끌고 올 수 있었지만 범죄자들을 생포해야만 했다. 한번은 곽운심이 빈번하게 여행로에서 여행객들을 위협하던 산적을 잡으려한 적이 있었다. 곽운심이 그 산적을 추적하여 발견했을 때 산적은 지역의 표사들과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곽운심은 싸움에 끼어들어 그 산적을 생포했다. 그러나 산적을 생포한 후 산적은 숨겨두었던 흉기를 꺼내어 곽운심을 죽이려 하였다. 곽운심은 그를 때려죽였다. 그처럼 범죄자가 죽었을 경우에는 형벌을 받게 되어 있었지만 지사의 보좌관은 곽운심을 처형하지 말기를 간청했다. 곽운심이 가진 비범한 무술적 재능을 알아보았기 때문이다. 지사는 사형을 집행하는 대신 곽운심에게 3년간 형을 살도록 판결했다. 그는 3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으면서도 형의권 수련을 계속하였다. 그가 감옥에서 풀려났을 때 그는 그가 감옥에 들어갈 때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다. 


감옥에 갇혀있는 동안 곽운심은 반보붕권(半步崩拳)이라고 알려진 기술을 연마했으며 그가 연마한 이 특별한 권은 매우 유명해졌다. 사람들은 “반보붕권은 하늘아래 모든 것을 제압 한다”고 말했다. 감옥에서 풀려난 후 곽운심은 그가 산적을 죽였던 지역에서 금전적 문제로 과거의 그 표국을 찾았다.


그는 표사들에게 자신이 산적을 죽였고 여행로는 안전해 졌으며 때문에 표사들의 일이 쉬워졌다고 말했다. 곽운심은 자신의 일이 그들에게 도움을 주었기 때문에 표국은 자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고 말했다. 곽운심의 무술실력을 알고 있는 표국은 그와의 싸움을 원치 않았기 때문에 그에게 얼마간의 돈을 주었다. 그러나 곽운심은 틈틈이 돌아와서 다시 돈을 요구했고 표국은 이러한 곽운심의 행동에 지쳐버렸다. 그들은 곽운심과 직접 대면하는 것 대신 그의 스승은 이능연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능연을 곽운심을 집으로 돌아오도록 불렀고 그에게 더 이상 표국을 괴롭히지 말라고 말했다. 또한 이능연은 “덧붙여서 너의 공부는 네가 생각하는 것만큼 대단한 것이 아니다. 너의 기술은 너의 사형인 차의재(車毅齋)에 미치지 못한다.”라고 말했다. 곽운심에게 이같이 말하며 이능연은 곽운심에게 두 가지 가르침을 내렸다.


첫 번째로, 뛰어나다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며 항상 더 뛰어난 누군가가 있기 때문에 거만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두 번째는 그의 형의권수련을 완전한 형태로 되돌리려 노력하는 것이었다. 형의오권을 배운 이후 곽운심은 다른 것을 배우길 원치 않았다. 그는 형의오권으로 싸움에서 한 번도 패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른 것은 배울 필요가 없다고 단정했었다. 곽운심이 형의오권을 배운 후 이능연은 곽운심에서 다른 형의권도 배우도록 권했지만 곽운심은 이것이 귀찮다고 생각했었고 그의 형의권수련이 완성되기 이전에 이능연을 떠났었다.


자신보다 차의재의 기량이 더 뛰어나다는 스승의 생각을 들은 곽운심은 매우 화가 났고 차의재를 찾아 그에게 도전하기 위해 산서성으로 갔다. 곽운심이 차의재의 집에 도착했을 때 차의제는 그를 보고 매우 반가워하며 말했다. 

 


“사제, 이렇게 방문해 줘서 반갑네. 들어가서 뭐라도 먹지.” 그러나 곽운심은 “아니요. 나는 싸우기 위해 여기에 왔습니다.”라고 말했다. 차의재는 싸우지 않도록 곽운심을 설득하려 했지만 곽운심은 고집을 꺾지 않았고 차의재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곽운심은 그의 유명한 붕권을 계속 시도하였다. 차의제는 곽운심의 공격에 계속 뒤로 물러서다가 곽운심이 다시 공격을 시도할 때 재빨리 그의 측면으로 돌아가 벽권(劈拳)을 날렸다. 차의제의 공격은 곽운심의 머리 바로 앞에서 멈추었다. 차의제는 곽운심의 가장 뛰어난 공격을 제압했다. 곽운심은 공격을 멈추고 “사형이 나보다 뛰어나다는 사부님의 말씀 그대로입니다.”라고 말했다. 이 사건이 있은 후 곽운심은 다시는 표국을 괴롭히지 않았고 형의권수련을 완성하기 위해 이능연에게 돌아갔다.  (2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