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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4)

지난 월요일 개인수련때 과욕을 부렸다.

군 시절 다친 다리 뒤쪽이 다시 아파와서 오늘도 정기수련은 쉬어야 했다.

마침 이렇게 된 김에 글이나 적어보자 하고 오랜만에 시작해본다.

 

오늘의 주제는 형의권 하면서 많이들 고생하는 부분 중에서 하나만 말해보려 한다.

귀한 가르침을 함부로 질질 흘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 하나가 되느냐 아니냐가 초급과 중급을 가르는 기준 같다.

삼체식을 그럭저럭 정확하게 서게 되면 중급 단계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부께서 (지금 단계에서 할 만큼은) 잘하고 있다고 하면

많이들 괄호 속을 읽을 수 없기에 스스로 잘 선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진실은 터치해봤자 아직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기다림을 당하는 것에 가깝다.

 

완전한 삼체식의 상태를 가정하자, 각종 요결들은 그것을 각 부분의 관점에서 서술한 것이다.

전자를 일체로 느끼고 깨닫는 것과 부분으로부터 접근하는 것은 인식의 차원에서 커다란 갭이 있다.

후자로부터 전자로 나아가야 한다. 그 방법은 비밀이다.

무튼 그렇게 몸 전체에 대한 관조력이 상승하면서 요결들을 처음부터 되짚어보면 그제서야 뭔가를 빠트리고 있었다는 것을 슬슬 깨닫게 된다. 사람마다 개인차가 있겠지만, 모두에게 공평하게 어려운 축에 속하는 것은 과를 접고 미려중정을 한 채로 함흉발배의 요결을 지키는 것이다. 과를 접는걸 신경쓰면 함흉발배가 깨지고 함흉발배 쪽을 신경쓰면 과가 펴진다. 사실 깨지는 이유는 간단하다 가끔 그렇게 분투하다가 둘 다 되는 순간이 오면 중심이 배로 잘 떨어지면서 그만큼 다리에 걸리는 부하도 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과를 접는 순간 머리에서부터 떨어지는 무게를 함흉발배를 깨서 위에서 잡아놓는 것이다. 이러면 몸쓰는 법이 근본부터 틀어진 것이니 나오는 것도 없거나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 무튼 그거 몇초 잠시 서고 으악 하려고 상당수의 사람들이 몇년간 소위 '수련'을 해온 것이다.

무게가 떨어진다면 그것이 다리에 대충 걸리게 될텐데 거기서도 미세 조정을 해야 더 잘 떨어트릴 수 있다. 형의 팔괘 태극이 디테일은 다르지만 이렇게 중심 가라앉히기 즉 침중을 이뤄내야 한다는 것은 공통점일 것이다. 그 다음엔 그것을 움직이면서도 유지해야 하는데 거기부터가 사실 진짜 본격적으로 공이 쌓이는 시작이다. 어떤 사람이 침중을 얼마나 할 수 있는지 보고 싶으면 ㅇㅇㅇ을 시켜보면 된다.

 

형의권이 3년이면 어느정도 이뤄진다는 말은 그 전제조건을 함께 살펴야 올바르게 이해될 수 있다.

하루 최소 4~5시간씩은 해야 한다는 것. 그래도 옛 사람들은 그 경지를 그저 작은 깨달음 즉 '소성'이라 했다.

하지만 하루 한시간은 커녕 일주일에 3회도 겨우 채우고 있다면 내가 몇년을 했는데 왜 이런 것인지, 중국무술의 실용성은 어떤지에 대해 왈가왈부하는게 우습다. 체계나 시스템 등에 대한 거시적 고민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고는 안했다. 길을 모르고 열심히 가면 더 적극적으로 길을 잃게 될 테니까. 혹은 꼭 노래를 부르거나 악기를 해야만 음악을 논할 수 있고, 그림을 그릴 줄 알아야 미술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의 말에 실릴 무게감이 어떨지 생각해 보자. 실천 없는 앎은 동서고금 우스운 허무를 담당하고 있다. 게다가 실천이라는 것이 그보다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있음이니 옛날부터 전해오는 말 중에 부타불교라 했다. 이는 때리지 않으면 제자를 키울 수 없다는 말이다. 체벌을 옹호하는 맥락이 아니라, 기예의 성질이 참으로 그러하다. 당해보면 한두번 되다가 다시 안된다. 그때 또 당해보고 그렇게 반복되는 과정 속에 골수에 새겨지고 나서야 글로 표현된 것을 보면 선대의 고민이 이해가 된다. 이 말로 하기 힘든 것을 이렇게 표현했구나 하고 감탄하면서 스스로가 그 문구를 보고 감탄할 수 있다는 점으로부터 깨달음의 정도를 점검할 수 있다.(무술 책이라는 것이 서술된 상당수의 이유는 바로 여기에 목표가 있을 것이다.) 그 반대의 경우는 단언컨대 불가능하다. 그 느낌에서 느낌으로 쿵푸는 세대를 건너 이어지고 있는 것이기에.

 

그러니 혹시나 책으로 무술을 배운다거나 하는 말이 있다면 눈과 귀를 씻어주고 깨끗하게 무시할 것. 당신이 천년에 한명 나올까 말까 한 싸움 천재라면 교본 학습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 경우에도 직접 배우는 것이 훨씬 빠를 것임은 자명하다.

 

다음 편에는 최근의 경험을 바탕으로 어떻게 해야 시행착오를 피할 수 있는지에 대해 써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