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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1)

삼체식 - 형의권의 시작이자 3분의 1

 

1. 서론

 

올해로 형의권에 입문한지 약 10년이 되어간다.

하지만 실력은 함께 혹은 비슷한 시기에 시작한 분들에 비하면 너무나 부끄러울 정도이니 이를 반성하며 현재를 바라보고 21년의 새로운 각오를 다진다.

 

2. 어떻게 시작하게 되었는가

 

2010년도 중반까지 이런 저런 인생의 괴로움을 술에 빠져 잊던 시기가 있었다. 세상에는 어리석음을 알고 미리 피하는 현명한 사람도 있지만 대다수의 바보들은 몸으로 겪어봐야 정신을 차리는데 나 역시나 잘난척 해왔지만 흔한 바보 중의 하나였던 것이다. 어느날 더이상 이래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 다시 책상 앞에 앉아 전공 서적을 보는데 6시간동안 30페이지도 읽지 못할 정도로 상태가 나빠져 있었다.

 

이제 인생 막다른 곳에 접어든 것인가 하는 좌절감에 잠들었고 다음날 늦게 일어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흔한 폐인들이 그러하듯 반사적으로 컴퓨터 앞으로 가서 무의미한 서핑을 하는데 우연히도 눈에 띈 문구가 있었으니

 

"당신의 잃어버린 활력을 되찾아 드립니다"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냅다 찾아간 곳은 홍대입구역 1번 출구의 영춘권 도장, 잠깐 형의권을 했다는데 왜 영춘권이냐고? 잠시만 기다려 달라. 그냥 구경만 하고 나가려고 했는데, 당시 사부께서 "왜 왔어요?'"라는 말과 함께 인터넷 사진과는 전혀 다른 매서운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었다. 살짝 쫄아서 얼떨결에 등록하러 와버렸다고 대답하고 시작하게 되었다. 말투는 어릴때부터 외국에서 살게 된지라 그런 것이고 눈빛과는 달리 나쁜 분은 아니었지만 그건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었다.

 

첫달에는 주 3회를 등록했지만, 하다보니 심각하게 재미가 들려서 곧 풀타임으로 하게 된다. 도장에서만 했으면 괜찮았을 것이지만 길거리에서도 자기도 모르게 연환충권이건 보법이건 막 연습하고 다녔었다. 당시 패션에 있어서도 일대 진보가 있었는데, 친애하는 후배 덕에 처음으로 슬림핏 청바지에 컨버스화 + 깔창 조합을 배웠던 것이다. 하지만 수련에 방해된다는 이유로 다시 그런 옷들을 멀리하기도 했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제정신이 아니었다. 학내 게시판에 관련 글이 안올라온게 다행이다. (어쩌면 올라왔을지도 모른다.) 활력이 넘치게 되어 스파링 클래스도 등록하여 누군가에게 얻어맞아 부어버린 턱을 부여잡고 국밥을 질질 흘리면서도 행복하게 웃던 기억이 마치 어제같다.

 

https://www.youtube.com/watch?v=6-8X7LS5Q90&feature=youtu.be

아 옛날이여...

 

원래 4단계 승급까지는 1년에 걸리는데 그걸 6개월만에 해치우고 초단기 마스터 기록을 갱신하겠다고 불태우던 시점이 늦가을, 하지만 원래 활력을 되찾으려 했던 이유가 무엇이었는가... 바로 공부 때문이었다. 한달간은 두가지 모두를 잡으려고 욕심을 냈었다. 허나 그쯤되니 하면 할수록 살이 빠지는 기이한 현상을 경험하게 된다. 비유하자면 몸이 욕심을 못견디고 무너져내렸다고 해야 하나? 깊은 아쉬움과 함께 시험이 끝나면 다시 찾아오겠노라고 인사를 드리고 도장 밖을 나섰다.

 

여기서 얌전히 끝났으면 여전히 영춘권을 배우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고로 능숙하던 분야 중 하나가 가던 길을 셀프로 꼬아버리는 것이었으니...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