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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2)

지난번 글의 마지막으로부터 이어서 시작해본다.

공부를 한다고 잠시 쉬고 오겠다고 한 후 약 2주일이 지나자 뭔가 문제가 생겼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 전에는 먼저 공부를 시작한 동기나 선후배들이 왜 날이 갈수록 인성(?)이 망가지는건지 이해를 못하고 있었다.

(노파심에 말하지만 인성이 망가지는 것과 그것을 바깥으로 옮겨서 민폐를 끼치는 것은 별도의 문제이다.

상당히 관계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다행히 주변에는 돌이켜보면 괜찮은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서서히 밀물에 잠기듯이 혹은 개구리가 서서히 끓는 물에 삶겨지듯이 고통이 스며들기 시작했는데

지난 몇달간 운동이 공부 스트레스의 배출구가 되어줬던 것임을 그때야 알게 되었다.

도장 쉬자마자 수련도 그만둔건 절대 아니었지만 그 빈틈을 도저히 혼자 메울 수가 없었다. 절정의 고수였다면 가능했으려나?

 

도장 내에서 친하게 지내던 분과 약속을 잡고 밥도 먹고 그 뒤에는 몸도 풀고 한 다음 고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대충 이렇게 물어봤던 것 같다.

분명히 이 상황에 운동이 필요하긴 한데 동시에 체력소모가 크지 않은 그런 것이 (있을 수) 있겠는가?

기대도 안하고 푸념조로 던진 질문이었건만 돌아온 답이 놀라웠다.

어디까지나 선택이지만 최근 상암 쪽에 형의권이라는 무술이 들어왔다더라, 수요에 맞을지는 모르겠지만 시간 되면 한번 구경이나 해 보고 오는 것 정도는 괜찮지 않겠는가?

 

그래서 갔는데, 당시로서는 정말이지 볼 것이 없었다. 요즘처럼 수련생의 8할 이상이 발력 연습을 하는 것과는 달리 권가도 다 못배운 분들이 태반이던 시절이었으니 말이다. 게다가 자세는 엉거주춤했고 동작은 느렸다.

다만 시간내서 뭔가를 알아보러 갔는데 눈으로만 보고 판단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생각했고,

시험까지는 약 3개월이 남았는데 한달 정도는 일주일에 하루 투자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었으며

무엇보다 정적으로 보여서 공부와 함께 할 수 있을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사건이 터졌다. 자세한 연유는 아직도 모르지만, 세상이 너무 좁아서 들어간지 얼마 되지 않아 기존 도장에서 내가 옮겼다고 생각하기에 이르렀고, 그 상황은 보통 이러한 문화 내에서는 좋지 못한 일인지라(이 또한 시간이 지나며 무술 외에 그것을 둘러싼 문화에 대해서도 듣고 찾아보고 하다보니 알게 된 사실) 복귀의 길이 사실상 끊어지게 된다.

 

새벽의 힘을 빌어 차분히 생각해 보자면 내 처신이 똑바르거나 지혜롭지는 못했다.

인생이란 겹겹으로 취해 있는 꿈과 같아서 내가 깨어났다 싶으면 어느순간 다시 그 속에 있음을 알게 되니 어쩌면 지금 이 순간도 깨어나지 못했음이 분명하지만, 그 와중에도 반성이 가능하다는 것은 어찌보면 우습고 어찌보면 다행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내심의 의사를 그 행동으로밖에 추단할 수 없음인데, 내가 속에 어떤 생각을 품었던들 제대로 전하지 못했다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랴. 아마 다시 돌아가서 선택을 하라고 한다면, 궁금한것은 못참는 성격이니 보러는 가고 싶었을텐데 그 전에 미리 잠시 구경만 하고 오겠다고 고했을 것 같다. 도리만 놓고 보자면 어쩌면 3달간 스트레스와 불면을 차라리 참았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다 지금 시점에서 바라보기에 그랬던 것이고 나라는 부족한 사람이 그나마 조금 덜 부족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깨지고 후회하고 하는 어떤 것들의 총량이 무언가를 통해서는 채워져야 했을 것이라고 납득해본다.

 

무튼 그렇게 본의 아니게 길이 틀어지긴 했는데, 그 사이에 약간의 위안을 얻어 오늘날까지의 가늘고 질긴 수련생활의 시작이 되었던 것 같다. 그것은 바로 손발의 차가움이 해소되는 사건이었다.

 

처음 입문하게 되면 기본 몸 푸는 동작과

서는 방법 두가지를 배우고

곧 이어서 오행권 중 첫번째 동작인 벽권을 배우게 된다.

 

사실 제대로 된 동작이어야 제대로 된 공이 쌓이고 써먹을 수가 있다.

하지만 여기에 수련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힘든 딜레마가 있는데

그 제대로 된 동작이라는 것이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기 전에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정말 부끄럽지만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도 그 기본 동작이 요즘에 와서야 원래 이랬어야 한다는 점을 깨닫고 있기 때문이었다. 대체 지난 세월의 의미는 무엇인가 하는 허탈감에 맞서기 위해 시작한 과거여행.

 

그러나 그렇게 불완전한걸 어떻게든 굴려가며 다듬는 것이 앞으로의 일이지만 그 과정에도 약간의 유익은 있다.

왜냐하면 더 정확한 동작으로 고쳐가기 위해서는 신체가 서서히 향상되어야 하는데 어설픈 동작도 그것을 도와주기 때문이다.

 

분명히 지금 생각하면야 충분히 빨랐지만 이전에 하던 것에 비하면 느릿느릿한 동작을 하는데 추위에 너무 약한 내가 한겨울에 밖에서 뭘 해도 손발이 따뜻하여 버틸 수가 있었다. 그 정도로 피가 돌려면 달리기로 쳐도 한 10분 20분은 뛰어야 하는데 그게 빠른 시간 내에 이뤄졌다. 또한 서는 동작이 그냥 멍때리고 하는게 아니라 계속 내면을 관조해야 하는 것이었기에 의도치 않게 일종의 명상 효과도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무술을 하든 일정 단계 이상에 오르면 그 길이 다를 뿐 수렴해가는 경지가 있긴 하다. 이전에 하던 것에는 그런 효과가 없다는 소리가 아니다. 당시의 내가 이 모든 것을 알기에는 많이 모자랐던 것이고, 형의권이라는 길이 초반에 그걸 좀 더 일찍 보여준 것이었을 뿐이다. 관리자 기록을 보니 영춘권 키워드로 유입된 방문자가 많아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남겨본다.

 

그리고 시작한지 한 2년이 지나자 원래 불가능했던 양반다리가 되기 시작했다. 이건 '과'라고 불리는 부분이 풀리면서 나타나는 것이다. 이 부분이 굳어있으면 몸의 가장 커다란 스프링인 허리와 골반 부분이 굳어버리고 충격 흡수를 나머지 관절로 할 수 밖에 없다보니 데미지가 축적되게 된다. 그 이후의 병증은 각 사람마다 다를 것이지만, 좋지 않은 결과라는 것 하나는 분명한 사실. 그 외에도 수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이번 글에서는 줄인다.

 

허나 이 변화들은 연 단위로 찾아온 것들이고, 당시에는 뭔가 비전도 보이지 않았으며 원래 하던 것과 분위기 등이 너무 달라서 힘든 것에 심지어 평소에 한달 생활비를 남겨서 모아놓았던 여유 자금이 운동으로 인해 거의 다 떨어진 시점도 그때였다. 그렇다면 당시의 나는 대체 무얼 바라고 끈질기게 남았던 것일까?

 

현 주제로는 한 5번 정도까지 쓰게 될 것 같은데 다음 글에서는 버텼던 계기와 초반의 수련(과 기억나는 삽질들)에 대하여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그 다음엔 중반 이후의 굴곡에 대해서 써 볼 것이고 마지막 글에서는 최근들어 새삼 깨닫게 된 것에 대해 남겨놓을 생각이다. 단 어느 정도의 비밀은 지켜야 하기에 그 부분은 일반 독자들에게는 매우 불친절할 수 있음을 미리 양해 바란다. 번외로 스쳐갔던 인연들과의 이야기를 임의의 이니셜과 함께 남길 수도 있겠으나 그건 당초의 목적과는 거리가 있으니 시간을 두고 써볼까 한다.

 

그 외에 지금 구상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최근 아동학대 사건과 관련한 쟁점 정리

위와 연결하여 근 미래에 파보고 싶은 일에 대한 단상

자잘한 서평을 짧게 써보는 코너

각종 유사과학에 대한 탐구 - 그 계기와 과정

보통은 쓰는 쪽이라기보다는 보는 쪽이지만 역사나 신학에 대한 그 동안의 생각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