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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술 이야기

왜 강철 호랑이는 종이 호랑이가 되었는가? - 전통 무술의 쇠락에 대하여

제목은 대성권의 종사인 왕향재 노사의 글에서 빌려왔다.

최근에 소위 전통 무술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여 관련된 영상이나 글들을 봤는데, 실로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왜 무엇을 배웠다면서 실제의 격투에서 그 동작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

왜 형의권을 배웠다면서 스텝을 밟고 잽을 날리고 숙달도 안된 로우킥을 하려 드는가

왜 팔괘장을 배웠다면서 피정타사의 수법이나, 특유의 보법이 전혀 쓰이지 못하는가?

태극권까지 가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 어느 정도는 이쪽 계열을 욕 안먹이실 분들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만약 여러분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권투 도장에 가서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그리고 스텝을 거울을 보며 열심히 연습한 다음에 링 위에 올라갔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이라 생각하는가? 매트릭스 영화에서처럼 무술을 주입받거나, 혹은 백년만에 한번 나올 천재라면 모르겠으나 보통은 때리는 쪽 생각엔 적당히, 하지만 당신이 느끼기에는 많이 맞을 것이다.

 

전통 무술이 빠진 함정 그 첫번째가 바로 이 대인 수련의 결여 부분이다. 기술과 동작들은 멋지게 배우는데, 사람을 놓고 쓰는 연습을 하지 않았다. 폐쇄주의와 신비주의, 그리고 자부심과 역사적 질곡이 빚어낸 참극이랄까? 이전에 길을 잃지 않는 법이라며 간략히 언급했지만, 사람 놓고 기술 걸어 봐야 기본 자세의 외형적인 부분과 내적인 이해가 더 깊어질 수 있다. 하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욕을 먹는 것이다.

 

두번째 문제는 대인 수련을 하고자 하여도 그 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몇년 전 사부가 세미나를 열어서 당시 모인 사람들에게 이렇게 질문했다. "태극권으로 어떻게 싸우는지 아시는 분 있나요?" 모르면 그저 체조일 뿐이다. 형의권은 동작이 비교적 직관적으로 보인다. 예컨대 붕권은 연습 동작을 보면 주먹을 지르면서 다리로 차고 나간다. 그런데 당신이 조금만 운동을 한 사람이라면 + 눈을 감고 있지 않다면 그걸 맞아줄 이유는 없을 것이다. 즉 상식적으로 판단할 때 그것이 쓰이는 상황은 여러분의 생각과 다르다는 것이다. 나무위키에 서술된 내용을 보니, 무기를 들다가 싸우는 상황을 가정해서 동작이 커도 된다는 식으로 써놨던데, 어떤 헛똑똑이가 쓴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아니다! (글을 읽으며 어그로가 쌓이고 쌓이다가 이 시점에 정말 속터져서 오던 잠이 싹 달아나는 바람에 물을 끓이고 티백을 꺼냈다.) 그나마 형의권은 눈으로 이럴 것이다 싶은 거라도 있지, 팔괘장은 배우기 전에는 도저히 제대로 된 용법을 알 수가 없다. 그런 연유인지 팔괘장을 팔괘장답게 쓰는 모습은 더욱 보기가 힘들다. 단쌍환장은 말할 것도 없고 너무 자주 나오는 오답으로 천장이 있다. 손끝 찌르기가 아닌데 다들 뭘 그리 열심히 뚫고 있는지. 태극권의 경우도 가짜 해석이 난무한다. 쉬샤오둥 선생이 처음에는 조금 원망스러웠지만 어느 지점에 이르니 응원하고 싶은 마음조차 들어버렸다.

 

세번째, 이 앞서 지적한 두 부분의 원인이라 할 수 있는 것인데, 바로 체계의 부재이다.

모든 고급 격투술은 기술이 의외로 단순하게 압축된다. 예컨대

검도에서는 머리 치는 법 3가지, 손목치기 그리고 스텝

권투에서는 주먹 쓰는 법 3가지, 그리고 스텝이 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상황에 따라 천가지 변화를 만들어낸다.

 

즉 어떤 기초적인 원리를 붙잡은 채로 연습을 통해 복잡한 상황에 대한 대응력을 길러가야 하는 것이다.

중국무술도 본래는 그러해야 했다.

 

형의권은 삼체식, 질보, 그리고 벽권과 붕권이 있을 뿐이고

팔괘장은 단환장, 쌍환장, 그리고 주권이 있고

태극권은 붕리제안체열주고의 8가지 힘쓰는 기법과 5가지 보법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원리로부터 변화하고 남은 껍데기만 낱개로 수련하고 본질은 잊혀지고 말았다.

당신은 권투를 수백가지의 상황별 대응 기법 하나 하나 모두를 기본동작 삼아 암기하는 방식으로 익힐 수 있겠는가?

할 수 없다면, 중국 무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이는 이원적 제자 양성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라고 사부는 추측한다.

생계를 위해 여럿에게 두루 가르치나, 아무나에게 넘겨줄 수는 없으니 그 중에서 될성부를 떡잎에게만 요체를 전했다는 것이다. 그나마 몇 안되는 무술 고수들이 '나는 다르게 배웠다' 라는 식의 말을 남겼는데 이것은 어느 정도의 근거를 제공해 준다. 나는 감히 여기에 내용을 덧붙여 보고자 한다. 그것은 바로 '실용주의' 정신이 아니었을까? 과거에 이름을 날린 명인들의 상당수는 하층계급 출신이었고, 글을 모르던 그분들에게 있어 무술은 면천과 출세의 수단이었다. 따라서 목숨 걸고 연습할 가치가 있었을 것이다. 이미 힘든 처지를 벗어나 한 문파를 일궈낸다 하더라도 또한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각고의 노력을 다해야 했을 것이다. 다음의 사례를 첨부해본다.

 

부종문 선생은 이전 시대에 양가 태극권의 선배 분들이 기울인 각고의 노력은 요즘 사람들이 상상하기 어려운 것이라고 말한다. 양로선 노사는 스스로 힘써 수련한 것 외에, 자손들에게 자신의 무술을 전승하기 위해, 건후(양로선의 셋째 아들이며 양징보의 아버지) 형제의 청소년 시절에 큰 몽둥이를 들고 그들의 무술수련을 따라다니며, 조금이라도 해이해지면 몽둥이로 때리곤 했는데, 일반 사람들이 참기 어려울 정도였다. 양반후(양로선의 둘째 아들)의 무적의 무공은 이런 엄격한 교육 밑에서 혹독한 수련을 통해서 만들어 진 것이었다. 양건후가 어린 시절, 양로선이 매일 감독하고 재촉을 하는 바람에, 수련은 거의 심신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였지만, 이후 그는 양가의 제2대 대표적 인물 중 하나가 된 것이다. 양반후는 11남을 두었는데, 딸이 수련할 때 잘 따라오지 못하자, 딸을 때리다 그만 실수로 죽이고 말았다.
 
부종문 선생은 말하기를 과거의 무술가들은 무공으로 밥을 먹고 살아야 했기에, 무공이 깊지 못하면 사람들과 대결하게 될 때, 한 번의 패배로 인생이 끝나기도 하고 심지어 생명이 위태로워질 수도 있었기에, 엄청난 각고의 수련을 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는 것이다. 현재는 시대가 달라지기는 했지만, 태극권의 공력을 성취하자면 역시 각고의 노력을 하지 않으면 안 되고, 이 외에 다른 길은 없으며, 지름길은 더더욱 없는 것이다.

 

[출처] 부종문(傅鍾文) 종사가 말하는 양식태극권 수련의 몇가지 요점|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다. 가령 손록당 조사의 발언을 떠올려보자

 

원수를 갚으려면 총을 배워라 + 무술은 건강을 위한 것이다

 

어떤 분야에 많은 인풋이 있어야 좋은 아웃풋이 나올 확률이 높은데, 지금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진지하게 하고싶게 만드는 요인이 있나? 구시대의 유물을 면하고자 했다면 어떻게든 저변을 넓히고 문호를 열어도 모자랄 판에, 누군가는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다른 부류는 세상 일에 무심하여 그리고 어느 쪽이 되었든 굳이 힘든 길을 걸을 필요는 못 느껴서 그렇게 고이고 썩어갔다. 왕향재 노사의 담권학요의같은 글을 참고해보면(왕향제 선생 담권학요의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문화대혁명이 터지기 한참 전에 이미 쇠락의 전조는 당대에도 보였던 것 같다.

 

개인수련 - 약속대련 - 자유대련 각 단계마다 어느 무술이든 처음부터 다시 태어나듯 배움이 리셋되는 듯한 고통을 느껴야 한다. 전통무술도 무술에 속하고자 한다면 이로부터 자유로울 수는 없다. 우선 이러한 시스템의 정상화도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약속대련 잘 하는 경지도 많은 이들에게 요원한데, 자유대련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내가 몸담고 있는 곳에서도 어느 정도 시도는 해보고 있지만, 가령 벽권을 소위 말하는 발경 - 이것도 알고 보면 알려진 것과 다르다, 신비주의 OUT! - 으로 제대로 맞으면 며칠간 교통사고 난 듯이 목을 못돌리는데 그런 식으로 다쳐가면서까지 험난한 증명의 길을 걸을 만한 동기를 가진 사람이 몇이나 될까?

 

여기에 대해서는 양가태극권의 창시자 양로선 노사의 두 아들 양반후와 양건후 형제와 관련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형인 양반후는 제자를 들이면 거칠게 다뤄서 다치거나 그만두는 사람이 많아 기예를 제대로 전하지 못한 반면, 동생인 양건후는 가르치는 방식이 부드러웠고 당대에 번창하였다는 것이다. 실전성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전자와 같은 고충이 있을 것이다. 하다못해 후자의 경우처럼 당대에 건강관리 수요를 충족하여 흥행할 만한 이유가 생기면 새로운 수련인구가 끊임없이 유입될 것이고 그것은 침체된 영역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어줄 좋은 계기가 될 수도 있으리라. 허나 지금처럼 인식이 부정적이어서야... 전통권의 입장에서 한동안은 힘든 세월을 보낼 수 밖에 없음이 명백해 보인다. 하지만 어느 영화에서였나? 무너진 예루살렘을 보며 선지자가 말했었지, 폐허 위에서 사람들의 마음이 다시 세워질 것이라고 말이다. 역사를 고찰하건대 개혁은 한다기보다는 8할쯤은 당하는 것이었다. 이대로 망할 운명이 아니라면 썩은 가지를 쳐내고 내실을 다지는 계기가 될 수도 있겠지. 다만 그 시기는 비유하자면 忍冬이라는 두 글자로 나타낼 수 있을 따름이니 깊어가는 한숨 속에 결의를 다질 때이다.

 

사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관심이나 열정이 큰 편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10년간 애증의 세월을 함께하고 나니 괜히 욕먹는게 꽤 쓰라릴 정도의 정은 든 것 같다. 왜 하필 이런 시기에 아무것도 모르고 해당 영역에 발을 들여 이다지도 엮이게 된 것일까? 아쉬움을 노력에 들이부어 하루 반나절을 꼬박 연습에만 투자한다 하여도 타고난 오성과 재능에 한계가 있으니 당장에 전설적인 존재가 될 수는 없겠지만, 곽운심 노사가 남긴 말처럼 평상의 도리를 쌓아간다면 훗날 남들이 뭐라하든 떳떳할 수 있는 어떤 열매를 얻을 것이라는 믿음은 있다. 또한 그 속에 사람들에게 어필할 이유 및 나름대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 비전도 있다. (물론 이건 아직은 비공개다.)

 

어찌되었든 현재 내가 걷는 길이 이 길이며,

지난 인생에 후회와 부끄러움 많고 많지만, 무술에 있어서만큼은 항상 떳떳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사이 차도 식고 마음도 가라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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