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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이야기

마지막 수업 회상

그날은 시작부터 힘든 날이었다. 학교 사이트에서 세 종류의 신발을 신고 1km당 5분 페이스로 10분씩 총 30분을 뛰면 5만원을 벌 수 있는 알바가 오전에 잡혀 있었다. 현역시절 3km를 11분 20초에 뛰었었고 전역 후에도 관리를 꾸준히 했으니 5분 페이스면 산책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고 여겼건만, 이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장비의 무게와 불편함 그리고 특히 두 번째 신발과의 상성이 최악이어서 힘이 예상외로 많이 빠지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약 6km정도 뛰고 다음 일정으로 갔다. 사회대 심리학과에서 하는 실험 참가였는데 결과에 따라 추가 보상이 있었다. 확률로 돌아가는데 심지어 중간에 그 조건이 바뀐다는 설명도 있었던 것 같다만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골고루 절여진 채로 잠시 방에 들러 간단히 씻은 다음 바로 학원 출근길에 올랐다. 진작에 끝났어야 했지만, 후임자를 구하고 인수인계 하는 문제 때문에 나가게 된 것이었다. 짧은 시간동안 준비하다보니 강의 컨텐츠의 양이 평소보다는 적었고 마지막 수업이라는 생각에 뭔가 한마디를 해 주고 싶었다. 어쩌면 저렇게 지쳐있었기에 그 순간 내가 한 말들은 다소 정제된 것은 아니었어도 평소보다 좀 더 진심이 담겨있었을것 같단 생각이 든다. 중간 빌드업은 날아가고 지산겸 괘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장면부터 기억이 난다. 아마 이 친구들은 주역이 뭔지 전혀 모르니 간략하게 언급을 했겠지. 보통 낯선 것을 소개할때는 익숙한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좋으니 태극기의 검은 막대기 이야기도 해 가면서.

 

"64괘가 각각 6개의 효를 가지는데 같은 하나의 괘라도 길흉이 뒤섞여 있습니다. 가령 아까 이야기한 건위천 괘는 다섯번째가 비룡재천인데 여섯번째는 항룡유회입니다. 아무리 좋아도 지나치면 후회가 있다는 것이죠, 그런데 크게 보면 두개, 보통의 사람에게도 열려있다는 관점에서 보면 6개 효의 풀이가 다 좋은 하나의 괘가 있습니다. 바로 지산겸입니다. 모양새를 봅시다. 원래 산은 땅 위에 우뚝 솟아서 높은 것인데, 여기서는 모양을 따져보면 땅 밑에 산이 있습니다. 그만큼 스스로를 낮추는 상입니다. 저기서의 겸이 우리가 겸손할때 그 겸이거든요. 그런데 여러분 자기 자신을 낮춘다는게 뭐라고 생각하세요? 그냥 어디서나 온화하게 웃으면서 당신이 잘났고 나는 못났소 하고 행동할 수 있다면 그게 겸손일까요?"

 

사실 이건 학창시절부터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온 문제이기도 했다. 어떤 애들은 내가 표정이 노려보는 거 같아서 싫다고 했다. 그래서 얼굴 펴고 웃고 다니려고 했더니 또 다른 누군가는 가식적인 웃음이 싫다고 했다. 어떤 애들은 내가 거만하고 잘난체를 한다고 싫어했고, 그걸 피하려들자 또 다른 애들은 잘났는데 안그런척 하는게 재수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 모든 짜증의 근원들을 한데 모아서 썩은 풀더미나 똥 무더기를 보듯이 대했다. 그러자 스트레스도 사라졌고 내 안의 인간적인 영역에 쓰여야 할 어빌리티도 많이 없어졌다. 뇌라는 것은 쓰면 키워주고 안쓰면 가차없이 열화시키니까. 그나마 그 시절 인연으로 좀 더 오랫동안 관계를 유지하고 지냈던 친구도 어느날 나에게 옆에 있어도 옆에 있는 것 같지 않아서 섭섭하다고 했으니 그렇게 세상사람들이 종종 뭐라하는 사회성 떨어지는 ㅇㅇ대생이 된 것이다.

 

대학을 가며 고향을 벗어나는 것이 가장 좋았고, 여기서는 과거와는 다르게 잘 살아보리라 큰 결심을 하였다. 얼굴 보이면 아는 척도 좀 열심히 하고, 잘 지내려고 노력하다보니 일반적인 대화가 어떤 것인지도 보다 정확히 알게 되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지방의 학교는 거친 말과 약간의 폭력이 공기처럼 함께 했는데, 이곳은 모두가 말을 부드럽게 했고 폭력은 거의 보이지 않다시피했다. 하지만 달콤함에 취해있던 것은 잠시였고 곧 주먹보다 혀가 때로는 더 아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내가 우스운 사람이 되는 건 이전처럼 무시하면 그만이니 아무렇지 않았지만, 그거 때문에 나랑 가까운 사람마저 웃음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것에 생각이 미치자 - 예컨대 너를 만나는걸 보니 걔도 참 이상한 어쩌구 등등 - 적극적으로 맞서기 시작했고 사람이 지킬 것이 생기면 일상이 때때로 전쟁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셰익스피어 소네트 29번처럼 때로는 스스로를 비참하게 여기거나 세상을 미워하고 원망하기도 하다가도 그 와중에 잠시 행복을 찾아서 어느 왕과도 내 처지를 바꾸지 않으리라 하기도 하였으니 항상 지기만 한 것도 혹은 이기기만 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내가 느낀 나의 삶은 장기적으로 우하향하는 경기 불황의 주식판과도 같이 느껴졌고 어느 저점을 찍자 운명이라는 것은 나를 더 비참하게 아래로 내려꽃기 위해 잠시 위로 들어올린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모든 날개가 다 꺾인 기분일 때 운명에 대해서도 공부해 보고, 종파를 떠나 인류의 오래된 가르침에도 귀의해 보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 중 십자가 아래서 인식의 전환이 되는 계기를 맞이한다.

 

처음엔 나는 죄인이라는 말에 그토록 거부감이 들었다. 평생을 스스로의 한계 안에서는 바르게 살려고 노력했기 때문이었다. 이런 나한테 죄라는 말을 붙이면 그거야말로 잘못된 것이라는 강한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죄책감이 성공적으로 스며드는 사건이 있었고, 그로 인해 어쩌면 생에 처음으로 낮아진 마음을 배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겸손은 아니었다. 그저 높은 자존심의 동전의 양면 같은 현상이었을 뿐인 것이다. 언제든 다시 고개를 빳빳하게 쳐들 수 있는 그런 마음 말이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이유는 모르겠지만 지난날보다는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계속 붙잡고 있었다. 그 마음의 뿌리가 무엇이든간에, 인과의 법칙에 따라 뿌리면 거둔다고 혹은 다르게 표현하면 구하면 얻는다고 하였듯, 어느날 책 속에서 이런 문구를 접하게 되었다. 키에르케고르의 사상을 다룬 일종의 입문서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어떤 한 존재가 완전히 거듭나기 위해서는 자신의 전 존재를 역사적으로 돌이켜야 한다. 여기서의 역사는 자기 자신만의 역사가 아닌 자기가 발딛고 선 모든 것의 역사를 의미한다"

 

가령 내가 로마 제국의 귀족 집안에서 태어난 귀한 신분이라면 노예라는 것이 숨쉬듯 당연했을 것이다.

100여년 전에는 백인 중산층 이상의 남자에게만 투표권이 있는 것이 당연한 것이었다.

오늘날에 태어난 대다수의 우리들은 탄소 에너지를 물처럼 쓰는 것에 아무런 거부감이 없다.

주어진 체제 아래에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때로는 공범이 되고 때로는 희생자가 된다. 

불교에서도 업에 대해 논할 때 내가 알고 저지른 것과 저지르고도 모르는 것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이 숨쉬는 듯한 공기 속에, 혹은 우리들의 무의식에 힘입어(거짓 평화) 나는 죄를 짓고 있었다.

이 모든 상념을 딛고 수업은 다시 이어진다.

 

"잘 모르겠지요? 그럼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산은 왜 스스로를 낮게 생각할 수 있었을까요? (약간의 정적) 제 말이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으나 제 생각에는 하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태산이 높다한들 하늘아래 뫼이로다, 이 시조 기억나시죠? 나를 바라보는 시선이나 의식이 나에게 머무르는게 아니라 하늘의 시선에서 나를 본다면, 즉 나를 바깥에서 내려다볼 수 있다면 비로소 내가 낮음을 알 수 있겠지요. 그렇다면 숙이는건 더이상 꾸미는게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 아니겠습니까? 내가 낮다는 근거가 없으면 자기 비하고 근거가 있으면 겸손입니다. 공자라는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자로야, 공부의 시작은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니라' 전 처음에 이 말이 되게 우습다고 해야하나? 이상했어요. 아니 자기가 뭘 모르는지 모르는 것도 가능한가? 근데 이게 참으로 뼈아픈 구절입니다. 맞습니다. 나 그리고 여러분들은 뭘 모르는지도 잘 몰라서 맨날 속은 것에 또 속는거에요. 그런데 내가 뭘 모르는지 알게 된다? 그럼 여러분들은 '길'을 알게 되는 거에요. 이걸 오늘날의 말로 바꾸면 메타인지라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테스형도 너 자신을 알라 했잖아요 물론 거기엔 또 다른 의미도 숨어있지만..."

 

그 뒤에는 학습에 있어서 메타인지를 높이는 방법과 그동안 관찰한 바에 의거하여 각자의 상태에 대한 진단과 유효한 처방을 내려주고 결국 저 테스형의 말이 가진 맥락에 대해서도 부연설명을 마치고 나니 이제는 정말 끝내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업들을 다 마친 후에 후임자가 될 분을 만나러 갔더니, 학내게시판에 쓴 글을 보고 온 분이었다. 빛과 어둠 양면으로 인수인계를 했다. 말이야 거창하지만 그냥 모두가 평화롭기 위한 조치였다고 해 두자. 집으로 가는 버스를 타면서 귀가 후에 치뤄야 할 또다른 전쟁을 잠시 생각했다. 일을 끝냈으니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야 하고 다음날 오전 수업은 공지를 보니 질의응답식으로 이뤄진다고 했으며 질문지도 준비되어 있었다. 결국 수면은 부족했고 일정들을 마치고 나니 몸에는 힘이 빠졌는데, 머리만 활성화된 그런 상태를 진정시키기 위해 상념을 정리해본다. 이러려고 만든 블로그니까.

 

저때나 지금이나 인생은 여전히 고통의 바다고 편히 쉴 날은 드물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리고 그 시작은 하나로 압축할 수 있는 것 같다. 이전보다 조금 더 나를 알게 되었다는 것. 하지만 요즘들어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세를 어떤 식으로든 떠나려던 마음을 접은 것에는 누군가 해준 이 말의 영향이 컸다.

"보통은 도라는 것을 구하겠다고 산으로 바다로 기어들어가는데 사실 거기에는 뭐 커다란 지혜 그런거따위 없어, 거기서 떠드는거 요새는 다 바깥에서 보고 들을 수 있어. 진짜 지혜는 사람들 부대끼는 사이에 숨어있는것"

머리로 하는 공부도 손발로 쌓는 쿵푸도 비슷한 지점에 걸려서 잠시 멈춰있는 것 같다.

앞으로 보낼 세월 속에서는 '남'을 더 잘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길러보고 싶다.

 

p.s. 다른 하나의 괘는 풍수환이다. 환은 흩어버린다는 뜻이다. 여섯 효가 다 좋으냐에 대해서는 견해의 대립이 있을 수 있으나, 개인적으로는 좋다고 본다. 다만 행하기는 힘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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