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 글

(20)
마지막 수업 회상 그날은 시작부터 힘든 날이었다. 학교 사이트에서 세 종류의 신발을 신고 1km당 5분 페이스로 10분씩 총 30분을 뛰면 5만원을 벌 수 있는 알바가 오전에 잡혀 있었다. 현역시절 3km를 11분 20초에 뛰었었고 전역 후에도 관리를 꾸준히 했으니 5분 페이스면 산책이나 다를 바 없으리라고 여겼건만, 이익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오는 것이 아님을 알았어야 했다. 장비의 무게와 불편함 그리고 특히 두 번째 신발과의 상성이 최악이어서 힘이 예상외로 많이 빠지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약 6km정도 뛰고 다음 일정으로 갔다. 사회대 심리학과에서 하는 실험 참가였는데 결과에 따라 추가 보상이 있었다. 확률로 돌아가는데 심지어 중간에 그 조건이 바뀐다는 설명도 있었던 것 같다만 더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이..
수산건(蹇) 전설에 의하면 복희씨가 황하에 출현한 용마의 등에 있는 무늬를 보고 8괘(건태리진손감간곤)를 만들고 이것을 겹쳐 64괘를 만들었다고 한다.(64괘는 신농씨가 만들었다는 설도 있다.) 사람들이 이로서 점을 치니 하나라에는 '연산역'이 있었고 은나라에는 '귀장역'이 있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역이라 부르는 것은 주나라에 이르러 만들어졌으니 - 그리하여 주역이다. 문왕이 각각의 괘마다 괘사를 붙이고 그 아들인 주공이 각각의 획마다 효사를 붙였다고 전해진다. 이하의 단전이니 상전이니 하는 것은 십익이라고 하여 공자가 달아놓은 주석이라 한다. 정확히는 단전 상 하, 상전 상 하, 계사전 상 하, 문언전, 설괘전, 서괘전, 잡괘전의 10개이다. 주역의 64괘 중에서도 4대 난괘라 하여 수뢰둔괘, 산지박괘, 택수곤괘..
왜 강철 호랑이는 종이 호랑이가 되었는가? - 전통 무술의 쇠락에 대하여 제목은 대성권의 종사인 왕향재 노사의 글에서 빌려왔다. 최근에 소위 전통 무술이 어떤 취급을 받는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하여 관련된 영상이나 글들을 봤는데, 실로 참담한 기분이 드는 것이었다. 왜 무엇을 배웠다면서 실제의 격투에서 그 동작이 나오지 않는 것인가 왜 형의권을 배웠다면서 스텝을 밟고 잽을 날리고 숙달도 안된 로우킥을 하려 드는가 왜 팔괘장을 배웠다면서 피정타사의 수법이나, 특유의 보법이 전혀 쓰이지 못하는가? 태극권까지 가면 더 할 말이 없다. 그나마 최근(?)에 어느 정도는 이쪽 계열을 욕 안먹이실 분들이 있는 것 같긴 하다. 만약 여러분이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권투 도장에 가서 스트레이트, 훅, 어퍼컷 그리고 스텝을 거울을 보며 열심히 연습한 다음에 링 위에 올라갔을..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3) 마지막 편입니다. 출처는 앞서의 두 글과 같습니다. 손가태극권 태극권, 형의권, 팔괘장을 연구한지 수십 년 후 손록당은 손가태극권을 만들어내었다. 손검운은 손가태극권에 팔괘장의 보법과 형의권의 다리기술과 허리기술, 태극권의 유법이 포함되어 있다고 말했다. 손록당노사의 태극권 손록당은 그의 태극권을 매우 잘 알게 되었고 그의 능력으로 이를 응용할 수 있게 되었다. 손록당의 기술은 널리 알려졌고 마침내 그 소문은 일본까지 다다랐다. 한 일본의 유명한 무술가는 손록당의 기술을 시험해 보기로 결심했고 손록당과 겨루기위해 그를 일본에 보내주도록 천황을 설득하였다. 1921년 일본의 무술가는 손록당을 방문하였고 통역인을 통해 이야기했다. “나는 당신이 유로 강을 제압하는 방법으로 중국무술을 수련한다는 말을 들었습니..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2) 출처는 (1)편의 서두에 밝힌 바와 같습니다. 곽운심을 만나다. 이괴원이 곽운심에게 형의권을 배우기 시작한 것은 그가 중년이 되어서의 일이며 비록 그의 무공이 높다할지라도 그의 스승에게는 미치지 못했다. 1882년 봄 이괴원은 곽운심을 만나기 위해 손록당을 심현으로 데려갔다. 곽운심은 손록당을 제자로 받아들이는 것을 허락했고 이괴원도 그의 형의권수련을 계속하기 위해 함께 머물렀다. 손록당은 새로운 스승과 함께 있기 위해 이사를 했고 하루 종일 형의권을 수련하였다. 손록당의 형의권을 보았을 때 곽운심은 깊은 감명을 받았다. 곽운심은 손록당은 형의권중 원숭이형상의 기술에 특히 능하다고 말하며 손록당을 활후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이는 손록당의 선천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고 결국에는 그의 스승이었던 이괴원의 수준..
손록당 조사야(祖師爺) 일대기 (1) 이하의 글은 형의권 연구회 카페에 올라와 있던 내용을 사부님의 허락을 받고 옮긴 것이다. 사부님도 한병기의 무예이야기라는 카페에서 가져오셨다고 한다. 허나 이야기를 듣자하니 원래의 출처는 형의권학 영문판의 일대기 부분으로 짐작된다. 손록당의 일생 손록당이라는 이름은 내가권을 수련하는 사람에게는 매우 친숙한 이름이다. 그는 형의권, 태극권, 팔괘장의 고수였으며 다섯 권의 책을 썼고, 앞의 세 가지 무술을 종합하여 손가 태극권을 만들어 내었다. 그의 이름은 중국무술을 수련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널리 알려져 있다. 많은 중국무술의 영웅들과 같이 손록당의 명성은 그를 전설로 만들었고, 그의 환상적인 무술실력에 관한 이야기들은 삽시간에 퍼져나갔다. 80살이 된 손록당의 딸 손검운은 그의 아버지에 대해 일반적으로 말..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5) 1. 어떻게 해야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거나, 혹은 빠르게 바른 길로 복구할 수 있는가 개인 단련을 성실하게 하면 사실 쉽게 망가지지는 않는다. 하지만 오랜 시간동안 수련터와 떨어져서 혼자 단련할 일이 많았던 과거사를 돌이키면, 그런 상황이 장기화 될 때 확실히 길에서 벗어나게 된다는 점은 장담할 수 있다. 냅둬도 안망가지는 어떤 임계점을 넘지 않는 이상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일이다. 혹은 사람이 살다보면 일 폭탄을 맞거나, 어딘가를 다치거나 하는 등의 사건을 겪게 되어 원치 않게 단기적인 단절의 흐름을 겪을 수도 있다. 이때 역시 약간의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혹은 어느날 갑자기 - 사부의 말에 의하면 실력이 한단계 오르려 할 때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하는데 - 갑자기 지금까지 했던 것들이 생..
21년의 앞자락에서 수련의 역사를 돌이켜보다. (4) 지난 월요일 개인수련때 과욕을 부렸다. 군 시절 다친 다리 뒤쪽이 다시 아파와서 오늘도 정기수련은 쉬어야 했다. 마침 이렇게 된 김에 글이나 적어보자 하고 오랜만에 시작해본다. 오늘의 주제는 형의권 하면서 많이들 고생하는 부분 중에서 하나만 말해보려 한다. 귀한 가르침을 함부로 질질 흘리고 다닐 수는 없으니까. 그 하나가 되느냐 아니냐가 초급과 중급을 가르는 기준 같다. 삼체식을 그럭저럭 정확하게 서게 되면 중급 단계는 되었다고 할 수 있는데 사부께서 (지금 단계에서 할 만큼은) 잘하고 있다고 하면 많이들 괄호 속을 읽을 수 없기에 스스로 잘 선다고 착각하기가 쉽다. 하지만 진실은 터치해봤자 아직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좀 더 몸이 만들어지기 전까지 기다림을 당하는 것에 가깝다. 완전한 삼체식의 상태를 ..